[칼럼] 학교폭력과 스포츠
학교폭력에 온 사회가 어수선하다. 현실경제의 어려움은 어른세계의 작은 굴곡이지만, 어린 싹들의 횡보(橫步)는 나라 장래가 걸린 엄중한 문제이다.
핵 가족시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훈육의 실종은 유교적 가치관의 상실로 이어져, 아이들이 '배려'의 의미를 배우지 못하고 자란다.
외 아들 딸로 형제없이 '공주' '왕자'로 떠 받들려 자라난 아이들은, 가정에서의 '사회성'에 대한 기초훈련을 체득하지 못한채 곧 바로 학교라는 정글에 방목된다.
면역력이 없는 이 왕자와 공주들은 '왕따' 라는 조그만 상처에도 큰 데미지를 입게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국가의 미래를 거론할것도없이 아이들 장래를 위해서라도 자녀를 여럿 두는것이 좋다.
보육에 따른 경제적 문제는 그 중요성을 절감하고있는 정치권에서 우선적으로 고심하는 중이니 좋은 대책이 나오리라 믿는다. 학교당국의 책임있는 노력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학문과 인성의 성숙을 추구해야할 학교 에서까지, '좋은 상급학교 -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이란 공식으로 아이들을 공부, 공부에만 매몰 시키는게 현실이다. 신체는 나약하고, 정신적으로는 경쟁과 시기, 이기심만 가득한 공부기계로 만들고 있는게 아닌지 되짚어 반성해야할 사안이다.
야구로 '문제학생'을 선도한 선생님들.
필자 중학시절 학교의 소위 '일진'은 대부분 '고아원' 친구 들이었다.
그 시절에는 고아원이 많았다. 그들은 동급생보다 두어살씩 나이도 많고 덩치가 크고 거칠었다. 없는자가 많이 가진자를 질시함은 인지상정, 온실의 화초인 공주,왕자들은 당연히 그들의 괴롭힘 대상 일수밖에.,,,
선생님들 께서 고심끝에 마련한 대책이 야구부 창단 이었다. 선생님들은 빈약한 봉급의 일부를 갹출하여 코치를 초빙해 야구부를 출범 시키셨다. 따뜻한 점심밥도(고구마도 귀하던 시절) 제공됐고 방과후 청소당번도 제외시켜 주셨다. 물론 주축 멤버는 이 '짱' 들이었다. 골목야구를 즐기던 필자도 자원했고,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팀은 여러 대회에서 입상해 선생님들을 기쁘게 해 드렸다. 우리 학교에서 야구로 크게 출세한 친구는 나오지 못했지만 최소한 말썽꾼 없는 모범학교가 됐었다.
국가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학교체육 강화해야.
그렇다. 스포츠 정신은 공정한 규칙을 배우게 하고, 패배와 좌절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협동 단결로 사회성을 고양하고, 부단한 훈련으로 체력과 인내심을 키운다. 이것은 영어단어,수학공식 몇개와 바꿀수없는 소중한 정신적 육체적 자산일 것이다. 이 나라가 진정 필요로 하는것은 꼼수나 부리는 '수학박사' 따위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할줄 아는 건전한 민주시민일 것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 60% 이상이 시력저하, 비만 등 운동부족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한다. 책상물림과 컴퓨터 탓이다. 현행 우리의 학교체육이란 일주일에 겨우 세 시간, 그것도 기껏 보건체조 정도이다. 턱도없다.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으면 토요일 하루 만이라도 체육의 날로 지정해, 아이들을 켬퓨터와 학원에서 해방 시켜야 한다. '토요일 전면휴교' 덕분에 사교육 시장만 비대해 졌다.
2박 3일 기숙학교가 우후죽순 격으로 수두룩 해졌다. 그만큼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비례해 학부모의 허리는 굽어든다. 그에따라 부익부 빈익빈의 명암은 더욱 짙어질 것이니 공정사회가 아니다.
토요일은 아이들을 운동복 차림으로 등교시켜 체육의날로 함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사 교육 시장은 토,일요일 전면 휴업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이 마땅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학교 폭력을 현저히 줄여줄것임을 확신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이 자라 나라의 장래를 밝혀줄 것이다.
체력은 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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