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다' 라는 말은 어릴적부터 늘상들어오던 아주 통념적인 구절이나, 상투적인 헛소리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SKY'니, '고소영', '강부자' 따위의 단어들이 증명하듯, 그들은 끼리끼리 작당하여 2021년대의 이 사회에서 버젓이 귀족행세를 하며 천민의 근접을 허용치않는 철옹성을 세워놓고, 주둥아리로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 '공사판에서 막노동을해도 얼마든지 잘살수있다' '눈높이를 낮춰라' 시골가서 농사를 지어라' 따위 씨도 안멕힐 망발들을 뱉어내고 있다. 가-관이다. "니나해라 노가다!!"
전 미국 최고의 대통령 링컨은 " 이 세상에 천한 직업은 없다. 다만 천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라는 공감가는 발언을 했다.
죽기살기로 학문을 연마하여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벌어 상류?층에 올라선, 인간의 근본인 이타적인 감성은 빼고 이기적 배타성만 갖춘, 대중위에 군림하려는 얼띠기 우월주의자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권력과 명예와 부를 다 차지한 이 나라의 고소영 강부자 나으리들이 찔끔해서 새겨 들어야 할 명언이다. 가문에 영광으로 길이남을 국회의원이니 장 차관을 했으면 왠만큼 먹고살만도 할진데, 감사한 마음으로 그 영광을 부여한 절대권력인 국민을위해 곧고 착한 마음으로 선정을 베풀기에 고심해야 마땅한 예의이겠거늘, 오히려 한술더 떠'낙하산'이니'회전문'이니'전관예우'니 해서 비열한 방법으로 자자손손에까지 부(富)를 물려 주겠다고 설쳐대니 이런류가 바로 링컨이 말한 '천한인간'이 아니겠는가?
대선이 다가오자 반값 아파트니 반값 등록금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시 또 대두되고 있다.
나는 이 반값 등록금 제도에 반대한다. 무슨 거창한 철학적 성찰이 있어서가 아니고, 지극히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이유, 내 아들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능한 이 애비가 학자금을 조달할수가 없어서였다.
새벽 여섯시, 졸린눈을 비비며 어둡고 비탈진 길을 비틀거리며 공장으로 출근하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며 쓰린 자괴감에 가슴을 친 적이 한두번 이었던가,- 따사로운 햇살이 밝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싱그러운 새잎이 돋아나듯 미래의 희망을 설계해야할 나이에,,,,,. 그 안쓰런 내 자식이, 하고싶은일 못하며 피땀으로 벌어바친 세금으로, 고급 실업자 양산하는 반값등록금 정책에 선심을 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 아들같은 처지의 대학 못간 젊은이가 40%가 넘는데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원대책은 아랑곳 않고, 그들이낸 혈세로 타인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한다는것은 공정사회(?)의 형평성에도 맞지않다.
각설하고,- 우리나라의 향학열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천민의 고통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지않으려는 발버둥인 것이다. 그러나 헛수고다. 저- 견고한 강부자의, 고소영의 장벽을 뛰어넘어 개천에서 용이 태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 현실을 타파하기 전에는 반값등록금도 소용없고 '공정사회'도 헛 구호다.
우리나라의 25~34세 연령층에서 대졸자 비율이 58%로 세계1위로 랭크됐다.
반면, 대졸 실업자수 역시 34만명이 넘어 인구대비 세계1위다.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대학 졸업생은 과다하게 늘고있지만, 그들을 수용할수있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게 피할수없는 현실이다. 올해만해도 대졸자 18만 8천명중 6만 6천명만 겨우 취업이 됐다한다.(한국 노동연구원 집계) 이런 상황은 개선되지않고 있는데, 양질의 인력을 배출할 우량 대학들이나 살아남아야지, 반값 등록금으로 마땅히 도태 되어야할 부실 사학까지 살려서 대책없이 대학생을 양산 한다면, 고귀한 국민의 세금으로 고급 실업자만 늘리는 어리석은 정책이 아닐수없다.
그 이전에 대졸자들을 실업에서 구제할 일자리부터 최대한 마련하고,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역으로 대졸자 수를줄여 구직자 공급과잉을 막아야 할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대학을 나오지못한 근로자들도 인간답게 품격있는 삶을 향유할수있게끔 그들의 삶의질을 높일 처우 개선책을 만들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실감으로 느껴질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것이 반값 등록금보다 우선이다.
정치꾼들은 내년에닥친 대 선을 앞두고 얄팍한 잔머리로 표밭갈이에 '반값등록금' '반값 아파트'를 이용해먹을 궁리는 접어야한다. '공정사회'라는 단어가 제 값을 할날이 자꾸 미뤄진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질것이고, 국민의 분노를 감당해내기 어려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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